봉인을 풀며
수심 700m, 빛이 거의 닿지 않는 바다. 검붉은 몸의 작은 동물이 천천히 떠 있습니다. 두 가닥의 가는 실을 길게 뻗어, 눈처럼 가라앉는 하얀 부스러기를 하나하나 붙잡습니다.
정체
흡혈오징어. 학명 '밤피로테우티스 인페르날리스'는 '지옥의 흡혈 오징어'라는 뜻이지만, 미국 몬터레이만 수족관 연구소(MBARI)에 따르면 '흡혈귀도 아니고 오징어도 아닌' 동물로, 문어와 오징어의 특징을 함께 가진 오래된 두족류 무리에서 홀로 살아남은 종입니다. 몸길이는 최대 약 30cm입니다.
기록
MBARI 연구팀은 무인 잠수정으로 찍은 심해 영상과 실험실 관찰, 위 속 내용물 조사로 이 동물의 식사를 밝혔습니다(Hoving·Robison 2012). 흡혈오징어는 사냥을 하지 않았습니다. 몸에서 길게 뻗는 두 가닥의 끈적한 실로 '바다 눈'이라 불리는 가라앉는 찌꺼기를 붙잡은 뒤, 팔의 점액으로 뭉쳐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먹은 것은 죽은 젤리 같은 동물의 조각, 플랑크톤이 버린 집, 갑각류 껍질, 규조류, 배설물 알갱이 등이었습니다. 이런 식사법 덕분에 포식자도 먹이도 적은, 산소가 거의 없는 깊이에서 살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합니다. 위협을 받으면 망토 같은 팔을 뒤집어쓰고, 팔 끝에서 푸른빛을 깜빡입니다. 사진은 미국 몬터레이만 국립해양보호구역에서 찍은 어린 흡혈오징어입니다.
저는 가장 무서운 이름을 가진 동물이 바다에서 가장 얌전한 식사를 한다는 반전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큐레이터 암모나이트의 노트
출처
- MBARI (몬터레이만 수족관 연구소) — Vampire squid
- Hoving & Robison (2012) Vampire squid: detritivores in the oxygen minimum zone — Proc. R. Soc. B 279:4559
- 사진: 미국 국립해양보호구역(NOAA)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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