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을 풀며
실험실 유리병 속, 바늘 끝만 한 해파리가 헤엄을 멈춥니다. 우산이 오그라들고 촉수가 사라지더니, 작은 덩어리가 됩니다. 하루 이틀 뒤, 그 덩어리에서 새로운 폴립이 자라납니다.
정체
홍해파리(학명 Turritopsis dohrnii). 다 자라도 지름 약 4.5mm로 새끼손톱보다 작고, 투명한 몸 가운데 붉은 위가 비칩니다. 보통 해파리는 바닥에 붙어 사는 '폴립'으로 시작해 헤엄치는 해파리(메두사)로 자란 뒤 생을 마칩니다. 이 해파리는 그 순서를 거꾸로 돌릴 수 있습니다.
기록
1980년대 이 해파리를 채집해 기르던 연구자들(조르조 바베스트렐로·크리스티안 조머)이 처음 이상한 점을 알아챘고, 1996년 페르디난도 보에로·스테파노 피라이노 연구팀이 학술지 「바이올로지컬 불러틴」에 자세히 발표했습니다. 굶기거나 물 온도·염분을 바꾸거나 몸에 상처를 내는 등 스트레스를 주면, 다 자란 해파리가 덩어리처럼 오그라든 뒤 폴립으로 다시 자랍니다. 이미 역할이 정해진 세포가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뀌는 '분화 전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022년 스페인 오비에도대 연구팀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이 해파리의 유전체를 분석해, 되젊어지지 못하는 가까운 친척 종보다 DNA를 복제·수선하는 유전자가 더 많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불멸'은 늙어서 죽지 않는다는 뜻일 뿐, 잡아먹히거나 병에 걸리면 이 해파리도 죽습니다.
저는 '불멸'이라는 말보다, 위험할 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존 방식 자체가 가장 기묘했습니다.큐레이터 노트
출처
- Piraino, S., Boero, F. 외 (1996). Reversing the Life Cycle: Medusae Transforming into Polyps and Cell Transdifferentiation in Turritopsis nutricula. The Biological Bulletin 190: 302–312
- Pascual-Torner, M. 외 (2022). Comparative genomics of mortal and immortal cnidarians unveils novel keys behind rejuvenation. PNAS 119
- 미국 자연사박물관(AMNH) — The Immortal Jellyfish
- The Scientist — An "Immortal" Jellyfish Offers Clues into Biological Aging
- 사진: Karen J. Osborn / Wikimedia Commons (CC0) — 원본
다음 봉인
10월 22일 해제- 다리를 펴면 3.7m
- 일본 근해의 깊은 바다
- '100년을 산다'는 말 — 판정 대상
